[도재기의 현대미술 스케치](8)‘최고가’ 작품은 ‘최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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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968회 작성일 20-12-19 05:47본문
약 5000억원에 공식 거래돼 세계 미술품 최고가 기록을 보유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구세주) 경향신문 자료사진
영원한 수수께끼, 그림값
세계 최고가의 그림은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구세주)다. 약 5000억원(4억5000만달러)이다. 경매를 통해 공식 거래된 미술품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12월17일 기준). 르네상스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1500년 초에 그린 유화다. 2017년 11월15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낙찰됐다. 65.6×45.4㎝ 크기의 작품은 오른손을 들어 축복을 내리고 왼손에는 수정구슬을 든 예수의 상반신을 표현했다. ‘남자 모나리자’라고 불리며 진위 논란, 파란만장한 소장 이력, 사우디아라비아 왕가 권력자로 알려진 소장자를 둘러싼 소문 등 숱한 사연으로 늘 화제다.
다른 고가 작품들도 많다. 빌렘 드 쿠닝, 폴 세잔, 폴 고갱,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구스타프 클림트, 렘브란트, 파블로 피카소, 모딜리아니 등의 작품이 공식·비공식 거래를 통해 각 3300억~1900억원으로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 작가 작품 중 최고가는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의 유화 ‘Universe 5-IV-71 #200’(일명 ‘우주’)다. 131억8000만원(8800만홍콩달러)에 재미교포 사업가가 크리스티 홍콩 경매(지난해 11월)에서 낙찰받았다. 한국 생존 작가의 최고가 작품은 이우환의 ‘점으로부터’(1977)다. 낙찰가 약 25억원으로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2012년 거래됐다.
보통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작품들은 비싸다. ‘저 값에 왜 사냐’는 이도 있겠지만 ‘더 주더라도 소장하겠다’는 누군가가 있다. 부유한 이들의 호사취미라는 비판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들의 관심으로 작품이 보존되고 예술가의 작업은 이어지며 미술시장도 돌아간다.
미술품값, 어떻게 정해지나
처음엔 작가가 정하지만 결국 미술시장의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결정된다. 첫 갤러리 개인전을 열고 작품도 공식적으론 처음 판 30대 중반 작가에게 물었다. “작품값을 처음 어떻게 정했느냐”고. 국내 대학원 졸업, 유학파 출신인 그는 판매와 상관없는 대안공간·미술관 전시에만 참여해왔다. “전시보다 값 정하는 게 더 큰 스트레스였다”고 토로한다. “막상 값을 매기려니 너무 복잡해요. 가장 큰 문제는 값의 근거들이 돈으로 수치화가 안 된다는 것이고. 시간과 재료비, 지인들의 판매가, 경력과 자존심 등을 생각해 그냥 적당히 정했죠.” 유화(캔버스 크기 약 120×90㎝로 흔히 말하는 ‘50호’ 안팎)의 경우 800만원을 갤러리에 제시했다.
갤러리와 협의가 시작됐다. “호당(1호는 캔버스 크기 약 22×15㎝) 15만원이 넘는데 신진 작가로는 너무 비싸대요.” 결국 450만원으로 크게 낮아졌다. 전시 중 실제 판매가는 더 낮아져 2점이 각 400만·300만원에 팔렸다. “컬렉터 중 한 분이 지인이어서 갤러리 측에 더 싸게 안 되느냐고 했죠. ‘이번 판매가가 향후 작품값 기준이 될 텐데…’라는 말에 취소했어요.” 작가는 전시 후 2점 작품값으로 350만원을 챙겼다. 판매가의 수익 배분은 통상 작가와 갤러리가 5 대 5여서다(비율은 협의에 따라 달라진다). 갤러리 딜러 몫이 많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만큼 미술품 판매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작가들의 첫 가격 산정은 대부분 주먹구구식이다. 미술품 특성상 산정 근거가 많고 계량화도 어려워서다. 개인적 거래도 있지만 작가가 공식적으로 미술시장에 들어서는 것은 갤러리를 통해서다. 갤러리 중개로 팔린 작품은 이후 작가와 상관없이 경매 등 컬렉터들 사이에서 거래된다. 작가와 달리 갤러리의 작품값 산정은 주먹구구식이긴 해도 훨씬 현실적이다. 작품의 절대가치를 중시하는 작가와 달리 판매가 중요하기에 가격 대비 판매 가능성 등을 예측해 정한다.
일반적으로 그림값 결정 요인은 작품의 예술적 수준을 뜻하는 예술성·작품성이 있다. 미술사적·미학적 가치 등이다. 주요 미술상 수상, 국내외 유력 미술관 전시, 전문가들의 비평 등을 통해 평가된다. 사실 이는 학술적 평가 부분으로, 미술시장에선 주로 작가의 인지도가 결정적이다. 유명 작가는 대중적 관심 속에 컬렉터층이 형성돼 고가가 가능하다.
같은 작가지만 작품 수준, 대표작 여부, 제작 연대, 주제, 재료 등에 따라 값 차이가 있다. 보존 상태, 소장 이력, 작품을 둘러싼 사연 등도 영향을 미친다. 희소성도 중요한데, 작가가 타계하면 희소성이 높아져 가격이 오르는 ‘사망 효과’도 있다. 작품의 환금성, 향후 가격 상승 여부 등도 작용한다. 갖가지 이유에 따른 대중적 선호도도 중요하다.
미술계에 알려진 선호 요인들이 있다. 세로보다는 가로 작품이다. 거실 벽, 특히 아파트 거실 소파 뒤편에 걸기 좋은 ‘소파용 그림’이다. 어둡고 칙칙한 것보다는 밝고 화사하고, 물감이 얇은 것보다 두꺼운 것, 마티에르가 두드러지는 작품도 선호된다. 이 밖에도 가격 산정 요소는 셀 수 없이 많다.
갤러리는 통상 캔버스 크기에 따른 ‘호당 가격’(1호 기준)을 정한다. 한 작가의 호당 가격이 10만원이라면 100호 작품은 1000만원인 식이다. 작품 크기에 따라 값이 정해지느냐는 거센 비판도 있지만 아직 많이 통용된다. 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첫 전시를 여는 작가의 호당 가격은 5만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호당 10억원이 넘는 작가도, 호당 1만원에도 작품이 팔리지 않는 작가도 있다.
상상초월할 만큼 비싼 미술 작품값
처음엔 작가·갤러리 협의하지만
결국 시장 수요·공급에 따라 결정
돈으로 수치화 안 되는 산정 요소
시장선 주로 작가의 인지도가 결정
보존 상태·소장 이력·사연도 영향
작가 타계 땐 희소성 높아지기도
적정가 아예 없다는 견해 많지만
객관적 산정 둘러싼 연구 이뤄져
통상가는 작업기간·경력 합으로
‘정량화 가능한가’ 비판적 시각도
비싼 작품이 곧 높은 예술성 아냐
컬렉터 주관적 취향 따른 것일 뿐
사실 한국에서 갤러리와 계약을 맺거나 경매에 작품이 오르는 작가는 ‘선택된 자’로, 전체의 0.1% 안팎 극소수다. 절대다수 작가들은 알아서 판매한다. 작품을 팔아 먹고살기가 힘들다는 의미다. 미술품은 공산품과 달리 정찰제가 아니다. ‘부르는 게 값’이고 또 ‘사는 게 값’이라는 말도 있다. 결국은 ‘이 값에 사겠다’는 구매자의 취향이 결정적이다. 그래서 미술품의 적정가격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양날의 칼, 그림값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그림값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전남도지사이던 2017년 당시 국무총리 후보에 지명되면서 인사청문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전남개발공사가 2013년 부인 김숙희씨의 작품 2점을 900만원에 구입했는데, 야당 측에서 비싸게 샀다며 강매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당시 미술계에선 “호당 10만원꼴인데, 오히려 좀 싸다”는 평가가 많았다.
[도재기의 현대미술 스케치](8)‘최고가’ 작품은 ‘최고’일까
그림값의 적정성을 둘러싼 논란은 늘 있다. 미술시장에 이중가격이 존재하고, 비공식 거래 비중도 높다. 구매자의 취향이 무엇보다 중요한 미술시장에서 적정가격이란 아예 없다는 견해도 많다.
그럼에도 보다 객관적인 미술품 가격 산정을 둘러싼 연구가 이뤄진다. 국내에선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대표적인데 미술품 시가 감정을 위한 매뉴얼, 작가·미술품의 통상가격 산출을 위한 기준과 모형 등을 발표했다. 각종 관련 자료의 정량적 분석을 통해 완벽하지는 않지만 시장에서 통용 가능한 작품가라고 인정할 만한 작가의 통상가격, 미술품의 통상가격을 산출해보는 것이다.
협회에 따르면, 작가의 통상가격은 작가의 작품활동 기간인 ‘작업기간’과 ‘경력’의 합으로 이뤄진다. 경력은 학업 특성(전공과 학력 등)과 전시활동(대관전·기획전·초대전 등), 사회적 인지도(수상 이력과 소장 내역·언론보도 내용 등) 요소를 계량화한다.
미술품 통상가격은 작가의 통상가격에 작품 보존 상태·작품 크기별 가격을 적용하고 바탕재료·주제·시기·채색재료를 고려한 작품성, 시장성을 점수로 평가·적용해 산출한다. 미술계에선 시장의 신뢰도·투명성 제고를 위해 객관적 미술품 가격 산정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인정한다. 하지만 학력 등 각 요소의 정량화가 가능한 것인가란 회의적·비판적 시각도 많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미술시장을 향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아트테크’ 속에 ‘아트펀드’가 조성되고 ‘블루칩 작가’ ‘수익률’이란 말도 통용된다. 주식·부동산처럼 투자를 넘어 투기 대상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미술시장의 확대는 미술계, 작가를 위해 바람직하다. 그러나 돈으로 예술성이 재단되는 미술의 시장종속화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높다.‘비싼 작품이 곧 높은 예술성의 좋은 그림’이라는 왜곡된 인식이 강화되고 있어서다. 예술성이 높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미술사적·미학적 의미와 가치를 따진 결과다.
반면 비싼 그림은 의미·가치보다 컬렉터들의 주관적 취향에 따른 것이다. 물론 비싸면서도 예술성 높은 작품도 많다. 그렇지만 비싸다고 꼭 예술성이 높은 것은 아니다. ‘비싼 작품이 예술성 높은 작품’이라는 인식이 확대될수록 자신만의 독특한 작업세계를 구축해 예술성 높은 작품을 하기보다 시장에서 선호돼 비싸게 팔리는 작업을 하기 쉽다.
사실 작품값이 높고 인기 작가이지만 미술사적·미학적 비평이 한 줄도 나오지 않는 작가들도 있다. 또 예술성이 높다고 상찬받지만 작품이 팔리지 않아 생존에 급급한 작가들도 있다.
미술시장은 작가들에게 양날의 칼이다. 예술가들은 그 칼 위를 외롭고도 아슬아슬하게 걷는 존재인지 모른다. 그래서 창작환경이 중요하다. 예술가들이 적어도 생존의 급급함은 넘어 자신의 작업을 할 수 있는 창작환경의 조성, 문화선진국이라면 해야 할 일이다.
이제 미술계도 다원화돼 부자들만이 아니라 보통사람들도 충분히 노닐 수 있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마음껏 즐기고, 갤러리에서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 있으면 스스럼없이 값을 물어보자. 비록 ‘그림의 떡’일지라도. 그렇게 즐기는 사람들이 미술을 포함한 문화예술을 발전시키고 또 풍성하게 만든다.
영원한 수수께끼, 그림값
세계 최고가의 그림은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구세주)다. 약 5000억원(4억5000만달러)이다. 경매를 통해 공식 거래된 미술품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12월17일 기준). 르네상스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1500년 초에 그린 유화다. 2017년 11월15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낙찰됐다. 65.6×45.4㎝ 크기의 작품은 오른손을 들어 축복을 내리고 왼손에는 수정구슬을 든 예수의 상반신을 표현했다. ‘남자 모나리자’라고 불리며 진위 논란, 파란만장한 소장 이력, 사우디아라비아 왕가 권력자로 알려진 소장자를 둘러싼 소문 등 숱한 사연으로 늘 화제다.
다른 고가 작품들도 많다. 빌렘 드 쿠닝, 폴 세잔, 폴 고갱,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구스타프 클림트, 렘브란트, 파블로 피카소, 모딜리아니 등의 작품이 공식·비공식 거래를 통해 각 3300억~1900억원으로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 작가 작품 중 최고가는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의 유화 ‘Universe 5-IV-71 #200’(일명 ‘우주’)다. 131억8000만원(8800만홍콩달러)에 재미교포 사업가가 크리스티 홍콩 경매(지난해 11월)에서 낙찰받았다. 한국 생존 작가의 최고가 작품은 이우환의 ‘점으로부터’(1977)다. 낙찰가 약 25억원으로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2012년 거래됐다.
보통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작품들은 비싸다. ‘저 값에 왜 사냐’는 이도 있겠지만 ‘더 주더라도 소장하겠다’는 누군가가 있다. 부유한 이들의 호사취미라는 비판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들의 관심으로 작품이 보존되고 예술가의 작업은 이어지며 미술시장도 돌아간다.
미술품값, 어떻게 정해지나
처음엔 작가가 정하지만 결국 미술시장의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결정된다. 첫 갤러리 개인전을 열고 작품도 공식적으론 처음 판 30대 중반 작가에게 물었다. “작품값을 처음 어떻게 정했느냐”고. 국내 대학원 졸업, 유학파 출신인 그는 판매와 상관없는 대안공간·미술관 전시에만 참여해왔다. “전시보다 값 정하는 게 더 큰 스트레스였다”고 토로한다. “막상 값을 매기려니 너무 복잡해요. 가장 큰 문제는 값의 근거들이 돈으로 수치화가 안 된다는 것이고. 시간과 재료비, 지인들의 판매가, 경력과 자존심 등을 생각해 그냥 적당히 정했죠.” 유화(캔버스 크기 약 120×90㎝로 흔히 말하는 ‘50호’ 안팎)의 경우 800만원을 갤러리에 제시했다.
갤러리와 협의가 시작됐다. “호당(1호는 캔버스 크기 약 22×15㎝) 15만원이 넘는데 신진 작가로는 너무 비싸대요.” 결국 450만원으로 크게 낮아졌다. 전시 중 실제 판매가는 더 낮아져 2점이 각 400만·300만원에 팔렸다. “컬렉터 중 한 분이 지인이어서 갤러리 측에 더 싸게 안 되느냐고 했죠. ‘이번 판매가가 향후 작품값 기준이 될 텐데…’라는 말에 취소했어요.” 작가는 전시 후 2점 작품값으로 350만원을 챙겼다. 판매가의 수익 배분은 통상 작가와 갤러리가 5 대 5여서다(비율은 협의에 따라 달라진다). 갤러리 딜러 몫이 많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만큼 미술품 판매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작가들의 첫 가격 산정은 대부분 주먹구구식이다. 미술품 특성상 산정 근거가 많고 계량화도 어려워서다. 개인적 거래도 있지만 작가가 공식적으로 미술시장에 들어서는 것은 갤러리를 통해서다. 갤러리 중개로 팔린 작품은 이후 작가와 상관없이 경매 등 컬렉터들 사이에서 거래된다. 작가와 달리 갤러리의 작품값 산정은 주먹구구식이긴 해도 훨씬 현실적이다. 작품의 절대가치를 중시하는 작가와 달리 판매가 중요하기에 가격 대비 판매 가능성 등을 예측해 정한다.
일반적으로 그림값 결정 요인은 작품의 예술적 수준을 뜻하는 예술성·작품성이 있다. 미술사적·미학적 가치 등이다. 주요 미술상 수상, 국내외 유력 미술관 전시, 전문가들의 비평 등을 통해 평가된다. 사실 이는 학술적 평가 부분으로, 미술시장에선 주로 작가의 인지도가 결정적이다. 유명 작가는 대중적 관심 속에 컬렉터층이 형성돼 고가가 가능하다.
같은 작가지만 작품 수준, 대표작 여부, 제작 연대, 주제, 재료 등에 따라 값 차이가 있다. 보존 상태, 소장 이력, 작품을 둘러싼 사연 등도 영향을 미친다. 희소성도 중요한데, 작가가 타계하면 희소성이 높아져 가격이 오르는 ‘사망 효과’도 있다. 작품의 환금성, 향후 가격 상승 여부 등도 작용한다. 갖가지 이유에 따른 대중적 선호도도 중요하다.
미술계에 알려진 선호 요인들이 있다. 세로보다는 가로 작품이다. 거실 벽, 특히 아파트 거실 소파 뒤편에 걸기 좋은 ‘소파용 그림’이다. 어둡고 칙칙한 것보다는 밝고 화사하고, 물감이 얇은 것보다 두꺼운 것, 마티에르가 두드러지는 작품도 선호된다. 이 밖에도 가격 산정 요소는 셀 수 없이 많다.
갤러리는 통상 캔버스 크기에 따른 ‘호당 가격’(1호 기준)을 정한다. 한 작가의 호당 가격이 10만원이라면 100호 작품은 1000만원인 식이다. 작품 크기에 따라 값이 정해지느냐는 거센 비판도 있지만 아직 많이 통용된다. 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첫 전시를 여는 작가의 호당 가격은 5만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호당 10억원이 넘는 작가도, 호당 1만원에도 작품이 팔리지 않는 작가도 있다.
상상초월할 만큼 비싼 미술 작품값
처음엔 작가·갤러리 협의하지만
결국 시장 수요·공급에 따라 결정
돈으로 수치화 안 되는 산정 요소
시장선 주로 작가의 인지도가 결정
보존 상태·소장 이력·사연도 영향
작가 타계 땐 희소성 높아지기도
적정가 아예 없다는 견해 많지만
객관적 산정 둘러싼 연구 이뤄져
통상가는 작업기간·경력 합으로
‘정량화 가능한가’ 비판적 시각도
비싼 작품이 곧 높은 예술성 아냐
컬렉터 주관적 취향 따른 것일 뿐
사실 한국에서 갤러리와 계약을 맺거나 경매에 작품이 오르는 작가는 ‘선택된 자’로, 전체의 0.1% 안팎 극소수다. 절대다수 작가들은 알아서 판매한다. 작품을 팔아 먹고살기가 힘들다는 의미다. 미술품은 공산품과 달리 정찰제가 아니다. ‘부르는 게 값’이고 또 ‘사는 게 값’이라는 말도 있다. 결국은 ‘이 값에 사겠다’는 구매자의 취향이 결정적이다. 그래서 미술품의 적정가격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양날의 칼, 그림값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그림값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전남도지사이던 2017년 당시 국무총리 후보에 지명되면서 인사청문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전남개발공사가 2013년 부인 김숙희씨의 작품 2점을 900만원에 구입했는데, 야당 측에서 비싸게 샀다며 강매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당시 미술계에선 “호당 10만원꼴인데, 오히려 좀 싸다”는 평가가 많았다.
[도재기의 현대미술 스케치](8)‘최고가’ 작품은 ‘최고’일까
그림값의 적정성을 둘러싼 논란은 늘 있다. 미술시장에 이중가격이 존재하고, 비공식 거래 비중도 높다. 구매자의 취향이 무엇보다 중요한 미술시장에서 적정가격이란 아예 없다는 견해도 많다.
그럼에도 보다 객관적인 미술품 가격 산정을 둘러싼 연구가 이뤄진다. 국내에선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대표적인데 미술품 시가 감정을 위한 매뉴얼, 작가·미술품의 통상가격 산출을 위한 기준과 모형 등을 발표했다. 각종 관련 자료의 정량적 분석을 통해 완벽하지는 않지만 시장에서 통용 가능한 작품가라고 인정할 만한 작가의 통상가격, 미술품의 통상가격을 산출해보는 것이다.
협회에 따르면, 작가의 통상가격은 작가의 작품활동 기간인 ‘작업기간’과 ‘경력’의 합으로 이뤄진다. 경력은 학업 특성(전공과 학력 등)과 전시활동(대관전·기획전·초대전 등), 사회적 인지도(수상 이력과 소장 내역·언론보도 내용 등) 요소를 계량화한다.
미술품 통상가격은 작가의 통상가격에 작품 보존 상태·작품 크기별 가격을 적용하고 바탕재료·주제·시기·채색재료를 고려한 작품성, 시장성을 점수로 평가·적용해 산출한다. 미술계에선 시장의 신뢰도·투명성 제고를 위해 객관적 미술품 가격 산정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인정한다. 하지만 학력 등 각 요소의 정량화가 가능한 것인가란 회의적·비판적 시각도 많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미술시장을 향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아트테크’ 속에 ‘아트펀드’가 조성되고 ‘블루칩 작가’ ‘수익률’이란 말도 통용된다. 주식·부동산처럼 투자를 넘어 투기 대상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미술시장의 확대는 미술계, 작가를 위해 바람직하다. 그러나 돈으로 예술성이 재단되는 미술의 시장종속화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높다.‘비싼 작품이 곧 높은 예술성의 좋은 그림’이라는 왜곡된 인식이 강화되고 있어서다. 예술성이 높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미술사적·미학적 의미와 가치를 따진 결과다.
반면 비싼 그림은 의미·가치보다 컬렉터들의 주관적 취향에 따른 것이다. 물론 비싸면서도 예술성 높은 작품도 많다. 그렇지만 비싸다고 꼭 예술성이 높은 것은 아니다. ‘비싼 작품이 예술성 높은 작품’이라는 인식이 확대될수록 자신만의 독특한 작업세계를 구축해 예술성 높은 작품을 하기보다 시장에서 선호돼 비싸게 팔리는 작업을 하기 쉽다.
사실 작품값이 높고 인기 작가이지만 미술사적·미학적 비평이 한 줄도 나오지 않는 작가들도 있다. 또 예술성이 높다고 상찬받지만 작품이 팔리지 않아 생존에 급급한 작가들도 있다.
미술시장은 작가들에게 양날의 칼이다. 예술가들은 그 칼 위를 외롭고도 아슬아슬하게 걷는 존재인지 모른다. 그래서 창작환경이 중요하다. 예술가들이 적어도 생존의 급급함은 넘어 자신의 작업을 할 수 있는 창작환경의 조성, 문화선진국이라면 해야 할 일이다.
이제 미술계도 다원화돼 부자들만이 아니라 보통사람들도 충분히 노닐 수 있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마음껏 즐기고, 갤러리에서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 있으면 스스럼없이 값을 물어보자. 비록 ‘그림의 떡’일지라도. 그렇게 즐기는 사람들이 미술을 포함한 문화예술을 발전시키고 또 풍성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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